생각 연습

소외된 마음의 비명 율장 3장 1절, 고려대장경 권45장12절

필쇄 2025. 5. 4.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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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의 아침은 늘 분주하다. 회의실 불빛 아래로 들리는 익숙한 목소리들은 나를 포함한 수많은 군상(群像)을 끊임없이 재촉한다. 그러나 수많은 얼굴 사이에서 나는 이방인처럼 느껴진다. 동료들과 아침 인사를 나눌 때조차 어쩐지 마음 한구석이 싸늘해진다. 말없이 건넨 커피 한 잔이 어색하게 느껴지고, 엉덩이 하나와 밥 한 끼를 함께 했을 뿐인데 ‘친구’라는 이름으로 맺어진 관계가 무색하게 흩어지는 건 한순간이다.

“친구 따르다 강남 간다.”
흔히들 쉽게 인용하는 속담이지만, 그 말 속에서 나는 오히려 회의감을 느낀다. 회사라는 공간에서 친구를 사귀는 것은, 낯선 도시에 전전긍긍하며 길을 찾는 일과 다름없다. 동질감이라는 미명 아래 쌓인 관계는 업무 분담의 균열 앞에 쉽게 무너진다. 내 일과 팀의 성과가 곧 나의 가치가 되는 체제 속에서, 진정한 우정의 씨앗은 자랄 틈을 잃는다.

율장(律藏) 3장 1절은 대중 간의 화합과 공존을 강조한다. 그 가르침이 말하는 것은 서로의 차이를 존중하고, 소외된 이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현실의 직장풍경은 차갑다. 지나치게 체계화된 업무 프로세스는 때때로 인간의 온기를 밀어낸다. 서로의 고민을 나눌 여유 없이, 우리는 성과라는 칼날에 몸을 맡기고 살얼음판 위를 걷는다. 작은 실수 하나가 낙인을 찍고, 동료들의 시선은 무심히 흘러간다.

고려대장경 권45장12절에는 부처님의 말씀이 새겨진 나무판이 전쟁 중에도 한결같이 새겨졌다고 전해진다. 그 정성은 백성들의 마음을 하나로 모았고, 위기의 순간에 굳건한 지지로 작용했다. 그러나 나는 묻고 싶다. 우리 삶의 또 다른 전장, 직장이라는 공간에서도 그런 결집을 기대할 수 있을까. 적어도 ‘친구 없는 직장 생활’이 계속되는 한, 우리는 외로운 전사들일 뿐이다.

열등감은 조용히 스며든다. 동료가 받은 칭찬과 승진 소식은 마치 나만 빼고 축배를 든 듯한 고통을 남긴다. 스스로를 탓하고 침잠하다 보면, 작은 성취조차 허무하게 느껴진다. 일견 ‘겸손’으로 포장된 태도는 사실 스스로를 평가절하하는 첫걸음이다. “친구는 곤란할 때 알아 본다”는 속담처럼, 정말 어려운 순간에 기댈 수 있는 이가 직장에 존재한다면 얼마나 다행일까.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다.

차분한 어조로 시작했던 이 글은 결국 비관과 분노, 절망과 좌절의 신산한 결말로 이어진다. 내면 깊숙이 자리한 분노는 마치 억눌린 화산 같다. 소외된 마음의 비명은 아무에게도 들리지 않고, 하루하루 직장이라는 그릇에 담긴 불안을 삼키며 나는 더욱 작아진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는 말처럼, 이미 무너진 인간관계 앞에서 나는 손쓸 길을 잃었다. 이대로라면 직장은 더 이상 일터가 아니다. 끝내 희망을 잃은 나는, 차디찬 현실 속에 홀로 남겨진 채 좌절의 구렁텅이로 빠져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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