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 연습

‘그들의 신은 배요’(빌립보서 3장19절)와 ‘포기하지 말라’(히브리서 12장1절): 뱃살의 역설에 숨겨진 영적 전쟁

필쇄 2025. 6. 24. 0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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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뱃살”은 육체적·정서적 불안의 상징이다. 벨트를 죄어 오르는 살점은 단순한 지방이 아니라, 끝없는 소비와 즉각적 만족을 좇는 문화의 표지판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우리는 이 불편함을 제거하기 위해 운동화 끈을 조여 매지만, 동시에 달콤한 디저트를 포기하지 못해 두 손을 들어 버린다. 이 모순은 단순한 생활 습관의 문제가 아니라, 성경이 지적하는 영적 역설과 맞닿아 있다.

배를 섬기는 현대인
사도 바울은 “그들의 신은 배요 그 영광은 그들의 부끄러움에 있고 땅의 일을 생각하는 자라”(빌립보서 3장19절)고 단언한다. 바울의 진단은 1세기를 넘어 21세기에도 유효하다. 배를 신으로 섬기면, 만족을 주겠다는 약속과 달리 부끄러움이 따라온다. 포만은 순간이고, 늘어나는 뱃살은 ‘스스로를 통제하지 못했다’는 증거처럼 매달린다. 그러나 여기서 중요한 점은 지방 자체가 아니라, 배를 신격화하며 삶의 중추를 허기에 맡겨 버리는 내적 태도다.

미가는 같은 현상을 사회적 차원까지 확대한다. “네가 먹어도 배부르지 못하여 네 속이 비울 것이며”(미가 6장14절). 욕망을 따라 배를 채워도 공허함은 깊어만 간다. 과식을 하면 포만감이 아니라 무거움과 허탈이 밀려오듯, 영혼이 배를 의지하면 평안이 아닌 속 빈 허기가 남는다.

이러한 공허는 직장에서의 지루함, 대인 관계의 피로, 가정 경제의 압박처럼 ‘배가 고프다’는 신호와 함께 우리를 다이어트와 폭식 사이로 내몬다. 바울은 이 모순을 “땅의 일을 생각하는 자”(빌립보서 3장19절)라고 규정한다. 땅의 일, 곧 즉각적 쾌락과 안전에 집중할수록 배는 더 커지고, 영혼은 더 말라 간다.

역설: 잃어서 얻는 구원
십자가는 기독교의 핵심 역설이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그리스도께서 “근본 하나님의 본체”이셨으나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져…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빌립보서 2장6절–8절). 가장 높으신 분이 스스로를 가장 낮은 자리로 끌어내리셨을 때, 인류에게 가장 큰 승리가 주어졌다.

바울은 이 패턴을 자신의 삶에도 적용했다.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자 함이라”(빌립보서 3장8절). 잃음은 얻음의 문이다. 다이어트를 위해 초콜릿 한 조각을 포기하듯, 영적 성장을 위해 ‘내가 붙들고 싶은 것’을 내려놓아야 한다. 역설적으로 비울 때 채워진다. 배가 신이 된 사람에게 가장 힘든 명령은 “비우라”지만, 십자가는 비움 없이 부활이 없음을 증언한다.

포기를 포기하라
육체적 다이어트에서 가장 어려운 순간은 체중 정체기다. 3주가 지나도 체중계 눈금이 꿈쩍하지 않으면, 사람들은 운동을 포기하거나 식단을 폭발시켜 버린다. 히브리서는 바로 이러한 지점에서 “인내”를 외친다. “이러므로 우리에게 구름 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 버리고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하며”(히브리서 12장1절).

여기서 ‘무거운 것’은 단순히 죄만을 가리키지 않는다. 얽매이기 쉬운 습관, 과도한 스트레스, 그리고 뱃살에 담긴 자기 연민도 포함된다. 포기하고 싶은 순간이 오면, 히브리서는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라”(히브리서 12장2절)고 권한다. 믿음의 경주는 단거리 스퍼트가 아니라 마라톤이다. 배를 신으로 섬기면 단주, 단식, 단거리 해결책만 찾는다. 그러나 예수를 바라보면 ‘포기를 포기하는’ 장기적 시야가 열린다.

미가의 정의, 히브리서의 인내, 빌립보서의 비움
미가는 “사람아 주께서 선한 것이 무엇임을 네게 보이셨나니… 오직 정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히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미가 6장8절)을 촉구한다. 정의·인자·겸손은 배를 섬기는 문화와 정반대다. 뱃살은 과잉축적의 결과이고, 정의는 나눔과 절제의 결과다.

히브리서는 “우리의 믿음의 고백을 굳게 잡고”(히브리서 10장23절) 흔들리는 손을 붙들어 준다. 미가의 외침이 방향을 제시한다면, 히브리서는 계속 가라고 말한다. 빌립보서는 비움의 이유와 목적을 제공한다. 세 권의 메시지가 합쳐져 하나의 운동 프로그램, 아니 영적 다이어트 플랜을 완성한다.

실천적 영적·육적 다이어트
비움의 식탁
하루 한 끼 절제는 단순한 체중 조절을 넘어 배에 대한 숭배를 깨뜨리는 영적 훈련이다. 밥그릇을 비울 때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신명기 8장3절)라는 말씀을 되새기라.

포기를 포기하는 운동
운동의 초반 고통은 히브리서가 말하는 ‘인내 연습’이다. 뛰다 보면 숨이 차고 포기하고 싶지만, 그때마다 “피 흘리기까지 죄와 싸우지 아니하였다”(히브리서 12장4절)는 경고를 기억하라. 아직 끝이 아니다.

나눔의 체지방 연소
옷장 속 남는 옷, 냉장고 속 과잉 식재료를 나누어 정의를 실천하면, 물질적 뱃살뿐 아니라 자기중심성도 연소된다.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사도행전 20장35절)는 초대 교회의 증언이 이를 뒷받침한다.

겸손 스트레칭
십자가 앞에서 몸을 낮추어 무릎 꿇는 기도는 근육의 스트레칭과 같다. 굳은 마음을 풀어 주고 흐트러진 자세를 교정한다. “자기를 낮추셨으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빌립보서 2장9절) 주셨듯, 낮춤은 곧 높아짐의 준비다.

결론: 뱃살의 역설, 영혼의 승리
뱃살은 역설이다. 채우려고 애쓴 결과물이지만, 사실은 비워야 사라진다. 십자가도 역설이다. 죽음이 생명을 낳는다. 그리고 믿음의 길은 포기하지 않는 포기다. 우리는 욕심과 자만을 포기하지만, 희망과 경주를 포기하지 않는다.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노니”(고린도후서 4장16절). 배가 조금 남아 있더라도, 체중계가 오늘도 꿈쩍하지 않더라도, 히브리서는 말한다. 계속 달려라. 빌립보서는 말한다. 더 비워라. 미가는 말한다. 정의와 겸손으로 걸어라.

이 세 권의 선포를 가슴에 품고, 허리에 맨 허리띠처럼 마음도 단단히 조여 매자. 뱃살은 서서히 사라지겠지만, 더 중요한 변화는 영혼이 배가 아닌 하나님을 신으로 삼는 자유다. 포기, 역설, 뱃살—이 세 단어가 당신을 넘어뜨리는 장애물이 아니라, 십자가의 역설을 체험하게 하는 출발선이 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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