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사기 6장 15절에서 기드온이 토로한 "주여! 내가 무엇으로 이스라엘을 구원하리이까? 보소서! 나의 집은 므낫세 중에 극히 약하고 나는 내 아비 집에서 제일 작은 자니이다"라는 절규처럼, 나는 매일 아침 거울 앞에서 나 자신의 한계를 확인한다. 낮은 역량으로 인한 낮은 연봉, 그리고 통제되지 않는 식욕으로 인한 비만이라는 세 가지 굴레가 나의 목을 조이고 있다. 스가랴 1장 3절에서 "만군의 여호와께서는 너희에게 내게로 돌아오라"고 하신 말씀처럼, 이 모든 문제의 근본에는 하나님으로부터의 멀어짐이 있음을 깨닫게 된다.
낮은 역량의 무게와 자기 비하의 늪
기드온이 자신을 "내 아비 집에서 제일 작은 자"라고 표현한 것처럼, 나 역시 직장에서 가장 무능한 사람이라는 자괴감에 시달린다. 동료들이 척척 해내는 업무를 나는 몇 배의 시간을 들여서도 제대로 완성하지 못한다. 회의에서 발표할 때마다 떨리는 목소리로 더듬거리며, 상사의 질문에 답하지 못해 침묵으로 일관하는 모습이 반복된다.
사사기에서 기드온이 밀의 정도를 포도주 틀에서 타작하며 미디안 사람들을 피해 숨어있던 것처럼, 나도 능력 있는 동료들 사이에서 숨어서 최소한의 업무만 처리하려 한다. 새로운 프로젝트가 배정될 때마다 "내가 할 수 있을까?"라는 의구심이 먼저 든다. 기드온이 "내가 무엇으로 이스라엘을 구원하리이까?"라고 탄식했듯이, 나도 "내가 무엇으로 이 일을 해낼 수 있을까?"라는 절망감에 휩싸인다.
이러한 역량의 한계는 단순히 개인적인 문제가 아니다. 현대 한국사회의 압축적 발전과 급격한 변화 속에서 개인들이 감당해야 할 부담이 과도하게 증가했기 때문이다. 지구화와 유연화, 개인화라는 전례 없는 환경 속에서 개인들은 이전까지 마주한 적 없는 도전에 직면하고 있다. 사회 안전망의 약화와 공동체 기반의 감소로 인해 개인이 모든 실패와 불행을 혼자 감당해야 하는 상황에 놓여있다.
낮은 연봉과 사회적 굴욕감
기드온이 자신의 집이 "므낫세 중에 극히 약하다"고 고백한 것처럼, 나의 연봉은 같은 연차의 동료들에 비해 현저히 낮다. 매월 통장에 찍히는 금액을 확인할 때마다 수치심이 밀려온다. 친구들과의 모임에서 연봉 이야기가 나올 때면 기드온이 포도주 틀에서 밀을 타작하며 숨었던 것처럼 나도 화제를 회피하려 한다.
스가랴 1장 4절에서 "너희는 너희 조상들을 본받지 말라 옛적부터 선지자들이 그들에게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너희가 악한 길, 악한 행위를 떠나서 돌아오라 하였으나 그들이 듣지 않았고 내말에 조금도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는 말씀처럼, 나 역시 하나님의 음성에 귀 기울이지 않고 세상의 기준에만 매몰되어 있었다. 연봉의 많고 적음으로 사람의 가치를 평가하는 세상의 기준을 그대로 받아들이며 자신을 비하해왔다.
현대 한국사회에서 소득격차는 근로소득보다 부동산 임대나 금융자산에 기인하는 바가 많아 자산격차로 인한 양극화가 심화되고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상향 이동의 꿈을 박탈당한 상황에서 일상의 영역에서도 갑을 관계나 루저 등으로 묘사되는 무시와 모욕을 받게 된다. 이로 인한 무력감과 수치심은 개인의 정체성에 깊은 상처를 남긴다.
비만이라는 육체적 부끄러움과 탐식의 죄
사사기의 에글론 왕처럼 나 역시 비만으로 인한 육체적 부끄러움을 안고 살아간다. 거울 앞에 설 때마다 불룩한 배와 이중턱을 보며 자괴감에 빠진다. 옷을 고를 때마다 맞는 사이즈를 찾기 어려워하고, 사람들 앞에 나설 때마다 시선을 의식하게 된다.
성경에서 경고하는 탐식의 죄가 바로 나의 모습이다. 잠언 23장에서 "네가 탐식자 중에 있으면 네 목에 칼을 둘지어다"라고 경고한 것처럼, 나는 음식에 대한 절제력을 잃고 살아왔다. 스트레스를 받을 때마다 음식으로 위안을 삼았고, 감정적 공허함을 음식으로 채우려 했다. 현대사회의 발달한 음식문화가 비만을 부채질하는 환경 속에서 더욱 깊은 늪에 빠져들었다.
구약의 나발이 "양과 염소를 수천 마리나 거느린 당대의 거부"였지만 나눔을 거부하며 탐욕에 빠져 심판을 받았듯이, 나 역시 음식에 대한 탐욕으로 인해 자신의 몸을 성령의 전으로 가꾸지 못하는 죄를 범하고 있다. 고린도전서 6장 19절에서 "우리의 몸이 성령님의 전"이라고 하신 말씀을 무시하며 탐식과 과식에 빠져있었다.
분노가 아닌 혐오, 그리고 자기 분열
현대 한국사회에서 '헬조선', '금수저 흙수저', 'n포세대' 등으로 묘사되는 사회갈등이 심각히 누적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문제들을 각자의 상처로만 간주하는 경향이 있다. 내파된 상처는 오히려 타자에게 전가되어 여성혐오, 외국인혐오 등으로 나타나며, 기성 질서의 유지를 위해 이들을 더욱 집요하게 색출하고 분리할 것을 요구한다.
분노와 혐오를 비교해보면, 분노는 부당함에 대한 사고로 주체가 대상과 마주하게 하지만, 혐오는 자신이 오염될 것이라는 생각에서 출발하기 때문에 주체는 끊임없이 자신과 대상을 분리하려 한다. 따라서 혐오의 감정은 수많은 타자들과 경계선 긋기를 하며 연대가 아닌 분리를 초래한다. 나 역시 나보다 성공한 사람들에 대한 혐오감을 키우며 자신을 더욱 고립시켜왔다.
하나님께로의 돌이킴과 새로운 정체성
스가랴 1장 3절에서 "만군의 여호와께서는 너희에게 내게로 돌아오라, 이것은 만군의 여호와의 말씀이다. 그리하면, 나도 너희에게로 돌아갈 것이다"라고 하신 말씀이 나에게 희망을 준다. 스가랴 선지자를 통해 말씀하시는 이가 여호와 하나님이시니, 하나님의 택함 받은 백성이 당연히 그 말씀에 청종해야 함을 깨닫는다.
기드온이 자신을 "제일 작은 자"라고 여겼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를 "큰 용사"라고 부르셨듯이, 나 역시 하나님의 눈에는 소중한 존재임을 믿어야 한다. 사사기 6장 12절에서 "여호와의 사자가 기드온에게 나타나 이르되 큰 용사여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계시도다"라고 하신 말씀처럼, 하나님께서는 나의 연약함 속에서도 당신의 능력을 나타내실 수 있다.
낮은 역량, 낮은 연봉, 비만이라는 세 가지 문제는 모두 세상의 기준으로 나 자신을 평가하고 정죄한 결과다. 하지만 하나님의 관점에서 보면 이 모든 것들이 당신의 영광을 드러내는 도구가 될 수 있다. 기드온이 작은 자였기에 하나님의 능력이 더욱 분명히 드러났듯이, 나의 연약함도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는 통로가 될 수 있다.
새로운 출발을 향한 다짐
스가랴 5장의 날아가는 두루마리 환상에서 "도둑질하는 자는 그 이쪽 글대로 끊어지고 맹세하는 자는 그 저쪽 글대로 끊어지리라"고 하신 말씀처럼, 하나님께서는 죄악을 제하시는 분이시다. 나의 게으름과 탐식, 그리고 세상적 가치관에 매몰된 삶의 방식들을 하나님께서 끊어주시기를 간구한다.
기드온이 밤에 바알의 제단을 헐고 아세라 목상을 찍어 번제를 드렸듯이, 나도 은밀한 시간에 나의 우상들을 제거해야 한다. 성공에 대한 조급함, 타인과의 비교, 음식에 대한 탐욕 등이 모두 나의 우상들이었다. 이것들을 제거하고 오직 하나님만을 의지하는 삶으로 돌아가야 한다.
사사기 7장에서 기드온의 군대가 3만 2천 명에서 300명으로 줄어들었지만 오히려 더 큰 승리를 거둔 것처럼, 나 역시 세상적 조건들은 부족할지라도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면 승리할 수 있음을 믿는다. 낮은 역량은 하나님의 능력을 의지할 기회가 되고, 낮은 연봉은 물질보다 하나님을 의지하게 하는 통로가 되며, 비만은 절제와 성령의 열매를 맺어가는 훈련의 장이 될 것이다.
스가랙 1장 3절의 "내게로 돌아오라"는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답하여, 나는 이제 세상의 기준이 아닌 하나님의 기준으로 나 자신을 평가하고 살아가기로 다짐한다. 기드온이 "내 아비 집에서 제일 작은 자"에서 "이스라엘의 구원자"가 되었듯이, 나 역시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새로운 정체성을 찾아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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