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성경 전도서, 논어, 불교경전 법구경
권세란 무엇인가. 직장이라는 작은 사회 안에서 펼쳐지는 인간관계의 역학은 마치 거대한 역사의 축소판과도 같다. 한 사람이 다른 사람 위에 서서 명령하고 지시하는 그 순간의 권력은 과연 무엇을 의미하는가. 전도서 3장 1절에서 "범사에 기한이 있고 천하 만사가 다 때가 있다"고 했듯이, 모든 권세에도 때가 있고 한계가 있다.
직장에서의 권세는 특히나 명확한 한계를 가진다. 조직의 구조 안에서 부여받은 일시적 권한일 뿐이다. 그러나 인간은 이러한 일시적 권한을 마치 영원한 것처럼 착각하기 쉽다. 전도서 1장 2절의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다"라는 선언은 바로 이러한 인간의 착각을 꿰뚫어본 지혜의 결정체이다.
권세를 누리는 순간, 인간의 마음속에는 복잡한 감정들이 일어난다. 우월감, 만족감, 그리고 때로는 안도감까지. 이러한 감정들은 자연스러운 인간의 반응이다. 하지만 문제는 이 감정들이 지나치게 강렬할 때 발생한다. 순간의 감정에 휩쓸려 권세를 남용하게 되면, 그 결과는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남기기도 한다.
논어에서 공자는 "군자는 위엄이 있으나 사납지 않고, 공경스러우나 편안하다"고 했다. 진정한 리더십은 권세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달려 있다는 의미이다. 권세는 도구일 뿐이다. 그 도구를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건설적일 수도, 파괴적일 수도 있다.
인간이 권세를 추구하는 근본적인 이유를 들여다보면, 결국 불안감에서 출발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자신의 존재 가치를 확인하고 싶어하고, 다른 사람들로부터 인정받고 싶어하는 마음이다. 그러나 이러한 욕구 자체가 잘못된 것은 아니다. 문제는 그 욕구를 충족시키는 방법에 있다.
불교의 법구경에서는 "모든 것은 무상하다"고 가르친다. 권세도 예외가 아니다. 오늘의 상사가 내일의 부하가 될 수 있고, 지금의 성공이 훗날의 실패로 이어질 수 있다. 이러한 무상함을 깨달았을 때, 권세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날 수 있다.
그렇다면 덧없음을 인식하는 것이 곧 체념을 의미하는가. 결코 그렇지 않다. 오히려 덧없음을 깨달을 때 진정한 지혜가 시작된다. 전도서 3장 12절에서 "사람이 살아서 기뻐하며 선을 행하는 것보다 나은 것이 없는 줄을 알았다"고 했듯이, 무상함을 깨달은 자야말로 현재 순간을 더욱 소중히 여길 수 있다.
직장에서의 권세는 분명 일시적이다. 하지만 그 권세를 통해 무엇을 남길 것인가는 전적으로 개인의 선택에 달려 있다. 권세를 이용해 다른 사람들을 억압하고 상처를 주었다면, 그 상처는 권세가 사라진 후에도 오랫동안 남을 것이다. 반대로 권세를 이용해 다른 사람들을 도우고 성장시켰다면, 그 선한 영향력은 권세가 사라진 후에도 계속 이어질 것이다.
논어에서 "덕으로 다스리는 것은 북극성과 같아서, 제자리에 있으면서 뭇별들이 돌아간다"고 했다. 진정한 리더십은 권세에 의존하지 않는다. 덕과 인격에 기반한 영향력은 직책이 바뀌어도 사라지지 않는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영원한 것을 추구한다. 권세를 통해 영원함을 얻으려 하지만, 이는 헛된 노력이다. 권세 자체는 영원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권세를 통해 만들어낸 관계, 남긴 가르침, 실현한 가치들은 영원할 수 있다. 전도서 12장 13절에서 "일의 결국을 다 들었으니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의 명령들을 지킬지어다 이것이 모든 사람의 본분이니라"고 했듯이, 진정으로 중요한 것은 권세 그 자체가 아니라 그것을 어떻게 사용했느냐이다.
감정은 순간적이지만 그 영향은 오래간다. 권세에 취해 순간의 감정으로 내린 결정들이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었는지 돌아보면, 권세의 무게를 느낄 수 있다. 권세는 결코 가볍게 다룰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다른 사람의 삶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강력한 도구이기 때문이다.
불교에서 말하는 인과법칙에 따르면, 모든 행동에는 그에 상응하는 결과가 따른다. 권세를 선용했다면 선한 결과가, 악용했다면 악한 결과가 돌아온다. 이는 단순한 도덕적 교훈이 아니라 삶의 법칙이다. 권세가 사라진 후에도 그 결과는 계속해서 영향을 미친다.
그렇다면 권세를 가진 자는 어떻게 처신해야 할까. 먼저 권세의 일시적 특성을 인정해야 한다. 오늘의 권세가 영원하지 않다는 것을 깨달으면, 겸손함을 유지할 수 있다. 겸손함은 권세를 올바르게 사용하기 위한 필수 덕목이다.
둘째로, 권세를 개인적 만족을 위한 도구로 사용하지 말아야 한다. 권세는 조직의 목표를 달성하고 구성원들의 성장을 돕기 위한 수단이어야 한다. 개인적 감정이나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권세를 사용하는 순간, 그것은 남용이 된다.
셋째로, 권세를 통해 무엇을 남길 것인지 끊임없이 성찰해야 한다. 전도서 7장 1절에서 "이름이 기름보다 나으며"라고 했듯이, 진정으로 가치 있는 것은 일시적인 지위나 권력이 아니라 평판과 인격이다.
역사를 돌아보면 권세를 가졌던 수많은 인물들을 만날 수 있다. 그들 중 일부는 권세를 이용해 자신의 욕망을 채우려 했고, 다른 일부는 권세를 통해 더 큰 선을 실현하려 했다. 시간이 흐른 후 우리가 기억하는 것은 그들이 가졌던 권세의 크기가 아니라 그들이 그 권세로 무엇을 했느냐이다.
공자는 "군자는 의에 밝고 소인은 이에 밝다"고 했다. 권세를 가진 자에게는 더욱 큰 책임이 따른다. 개인적 이익보다는 올바름을 추구해야 하고, 순간적 감정보다는 장기적 관점에서 판단해야 한다.
권세의 덧없음을 깨달은 자는 오히려 더 자유로워질 수 있다. 권세에 집착하지 않기 때문에 더 과감한 결정을 내릴 수 있고, 더 진정성 있는 관계를 만들 수 있다. 권세를 잃을 것에 대한 두려움에서 벗어나면, 진정으로 옳은 일을 할 수 있는 용기를 얻게 된다.
결국 남는 것은 무엇인가. 권세 자체는 남지 않는다. 하지만 그 권세를 통해 만들어진 변화, 성장시킨 사람들, 실현한 가치들은 남을 수 있다. 전도서 11장 1절에서 "너는 네 떡을 물 위에 던져라 여러 날 후에 도로 찾으리라"고 했듯이, 선한 영향력은 예상치 못한 시점에 다시 돌아온다.
권세를 가진 순간의 선택이 훗날의 평가를 결정한다. 순간의 감정에 휩쓸려 내린 결정이 평생의 후회가 될 수도 있고, 어려운 상황에서도 원칙을 지킨 선택이 평생의 자부심이 될 수도 있다. 권세는 이러한 선택의 기회를 제공하는 무대일 뿐이다.
인간의 삶은 유한하고 모든 것은 변한다. 하지만 그 변화 속에서도 변하지 않는 것들이 있다. 사랑, 진리, 정의와 같은 가치들이다. 권세를 통해 이러한 영원한 가치들을 실현할 때, 비로소 덧없는 권세가 의미를 갖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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