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무리의 사슴이 숲속에서 평화롭게 지내던 중 한 마리가 우연히 인간의 소금 창고를 발견했습니다. 그 순간부터 사슴들은 서로를 밀치며 소금을 차지하려 했고, 이전의 화합은 산산조각이 났습니다. 중아함경은 이러한 욕심에서 비롯된 갈등이 인간 사회의 소외감과 '내 편이 아니면 적'이라는 이분법적 적대감의 근원임을 지적합니다. 본래 청정한 마음을 간직한 존재들이 어떻게 집단적 분열에 빠지게 되는지, 그 메커니즘을 불교 경전과 선종의 수행 체계를 통해 탐구해봅니다.
욕심이 만든 적대의 미로
중아함경 제25권 인품 4경은 "중생들이 욕심을 인(因)으로 하고 욕심을 연(緣)으로 하여 어머니와 아들이 다투고 형제가 서로 허물을 말한다"고 경고합니다. 여기서 '인'은 씨앗과 같은 근본 원인을, '연'은 그것을 발아시키는 조건을 의미합니다. 현대 조직사회에서 팀원들이 작은 이익을 놓고 암투를 벌이는 모습은 2,500년 전 부처님의 지적이 여전히 유효함을 증명합니다.
소금 창고의 우화: 사슴 무리가 소금을 발견하기 전까지는 상호협력 관계였으나, 한정된 자원을 두고 경쟁하는 순간 '내 것'과 '네 것'의 경계가 생겨납니다. 중아함경은 이러한 현상을 "투구를 쓰고 갑옷을 입으며 창과 활을 들고 서로 공격한다"는 비유로 설명합니다.
3독(三毒)의 사슬: 욕심(탐), 성냄(진), 어리석음(치)이 인간 관계를 오염시키는 과정을 경전은 "해침의 생각이 일어나면 생노병사의 고통에서 벗어날 수 없다"고 지적합니다. 이는 현대인의 우울증과 소외감이 단순한 심리적 문제가 아니라 근본적인 번뇌에서 비롯됨을 시사합니다.
심우도 제1단계 '심우(尋牛)'에서 방황하는 동자의 모습은 이러한 갈등에 휩싸인 현대인의 초상을 그대로 반영합니다. "아득한 수풀을 헤치며 소를 찾아나서지만, 들리는 것은 늦가을 매미 소리뿐"이라는 게송은 욕심에 매몰된 자아의 고독을 상징적으로 드러냅니다.
심우도의 10가지 길: 적대에서 화해로
금산사 심우도 벽화는 인간이 적대감을 넘어 화합에 이르는 10단계 수행 과정을 보여줍니다. 제6단계 '기우귀가(騎牛歸家)'에서 동자가 소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는 모습은 중아함경이 말하는 "욕심 없는 생각(無欲念)이 열반으로 인도한다"는 교훈과 맞닿아 있습니다.
심우(尋牛): "내 편이 아닌 자는 모두 적"이라는 망상을 깨닫는 출발점. 중아함경은 이 단계를 "망상이 진애(塵埃)처럼 마음을 덮는 때"로 설명합니다.
견적(見跡): 타인의 고통에서 자신의 모습을 발견. "살생을 하면 다음 생에 단명의 과보를 받는다"는 경구는 적대감이 결국 자신을 해친다는 사실을 각성시킵니다.
견우(見牛): 상대의 본성을 직시. 심우도 제3단계 게송 "소의 뿔과 머리가 하늘을 찌른다"는 상대방의 진면목을 보는 안목을 상징합니다.
득우(得牛): 이분법적 사고의 고삐를 잡음. 중아함경은 이 단계를 "해침의 생각을 여의는 것"으로 표현하며, 심우도는 "야생소를 길들이는" 이미지로 그립니다.
목우(牧牛): 지속적인 관찰로 편견 제거. "자심(慈心)으로 원한을 맺지 않는다"는 수행이 여기에 해당합니다.
이 과정을 거치면 제10단계 '입전수수(入廛垂手)'에 이르러 "거리에서 중생을 구제하는" 경지에 도달합니다. 이는 '적'으로 분류했던 존재들까지 포용하는 자비심의 완성입니다.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도: 소외감 극복 실천법
범어사 보제루 벽화에 등장하는 홀로 소를 타고 있는 동자의 모습은 중아함경의 가르침을 압축합니다. "욕심 없는 생각, 성냄 없는 생각, 해침 없는 생각"을 실천하는 구체적 방법은 다음과 같습니다.
호흡 관찰법: 상대가 적으로 보일 때 3회의 심호흡을 합니다. 이는 경전의 "다사념(多思念)" 훈련과 동일한 원리입니다.
역지사지 명상: "만약 내가 저 사람의 처지라면?"이라고 스스로 묻습니다. 심우도 제5단계 '목우'의 "소를 단속하며 길들인다"는 수행의 현대적 적용입니다.
자비염불: 상대의 이름을 부르며 "이 사람도 나와 같이 고통에서 벗어나기를" 기원합니다. 중아함경이 말하는 "자심해탈"의 구체적 실천입니다.
백련사 스님의 경구 "진애가 낄 곳이 없는 마음"은 이러한 수행의 종착점을 가리킵니다. 소금 창고 앞에서 다투던 사슴들이 다시 한 강가로 모여 물을 마시는 것처럼, 욕심의 눈가리개를 벗어던진 인간은 본래의 청정한 공동체를 회복할 수 있습니다.
심우도 제7단계 '망우존인(忘牛存人)'의 경계에 이르면 "소 같은 것은 모두 잊어버리고" 오직 화합의 현장만이 남습니다. 중아함경이 약속한 열반은 먼 저편의 이상향이 아니라, 욕심의 장막을 걷어낸 순간 바로 여기에서 피어나는 현실입니다. "시름과 걱정을 벗어나리라"는 부처님의 말씀은 고단한 현대인에게 울림 있는 희망이 됩니다.
'생각 연습' 카테고리의 다른 글
"보라 내가 다림줄을 내 백성 이스라엘 가운데에 띄우리라" (아모스 7장 8절) (0) | 2025.05.23 |
---|---|
"내 어머니 계시는 곳에 나도 머물리라"(룻기 1장17절): 직장 내 갈등과 주관적 평가 속에서의 신앙적 균형 찾기 (0) | 2025.05.20 |
"가난한 이의 고통을 보시니 그 마음에 불쌍히 여기시더라" (관무량수경 2경 15구) (1) | 2025.05.15 |
해 아래서 수고하는 것이 헛되다 전도서 1장3절 (0) | 2025.05.14 |
인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 누가복음 19장10절 (0) | 2025.05.1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