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 연습

예레미야 13장이 보여주는 인간 본성의 굴레: 회복 불가능한 죄악과 희망의 간극

필쇄 2025. 3. 9. 0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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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피할 수 없는 심판의 그림자
예레미야는 유다 백성에게 엄중한 경고를 전한다. “네겝 지방의 성들이 봉쇄되어 통과할 자 없고, 유다 사람들이 모두 포로가 되리라.” 이 말은 단순한 전쟁의 예언이 아니라 인 간의 죄악이 초래한 필연적 결과를 드러낸다. 『도덕경』은 “자신을 아는 자는 밝고, 자 신을 이기는 자는 강하다”(제33장)고 말하지만, 유다는 오히려 교만과 타락에 빠져 자신 을 잃었다. 북쪽에서 밀려오는 군대의 그림자는 그들의 영적 해이함이 투영된 어두운 거 울이다.

이 경고는 오늘날에도 유효하다. 자신의 잘못을 외면하는 이들의 삶은 언젠가 무너지는  성벽과 같다. 불교 『법구경』은 “악을 짓는 자는 마치 먼지가 바람을 거슬러 올라가다  결국 자신을 더럽히듯 스스로를 망친다”(제125구)고 경계한다. 유다의 비극은 개인의 죄 가 집단의 운명으로 확장되는 과정을 보여준다.

2. 변하지 않는 본성: 표범의 반점과 에티오피아인의 피부
예레미야는 냉정한 비유로 인간의 한계를 지적한다. “에티오피아인이 피부 색을 바꿀 수 있으며, 표범이 반점을 없앨 수 있겠느냐?” 이는 죄악에 물든 인간의 본성이 쉽게 바뀌  않음을 단죄한다. 힌두교 『바가바드 기타』도 “습관은 인간을 그물처럼 옭매인다”(3:33)고 말한다. 오랜 시간 쌓인 습성은 제2의 천성이 되어, 선한 의지마저 무력하게 만든다.

그러나 이 절망적 선언은 회개의 가능성을 완전히 부정하는가? 도교의 『장자』는 “물은 그릇에 따라 형태를 바꾸지만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소요유〉)고 말한다. 인간의 본성이 표범의 반점처럼 고정되었다면, 오히려 그 안에서 새로운 길을 찾아야 한다. 문제는  변화의 불가능성이 아니라, 변화를 외면하는 태도다.

3. 흩어짐의 은유: 사막 바람에 날리는 지푸라기
하나님은 “너희를 사막의 바람에 날아가는 지푸라기처럼 흩어버리리라”고 선고한다. 이  단순한 형벌이 아니라 스스로 초래한 무게 없는 존재의 종말이다. 『쿠란』은 “불신자의 행위는 사막의 신기루 같아 목마름만 남긴다”(24:39)고 설명한다. 유다 백성의 신앙은 표면적이었고, 그 결과 영혼의 뿌리 없이 쉽게 흩어졌다.

이 흩어짐은 동시에 재구성의 기회이기도 하다. 불교의 『반야심경』은 “형상이 공(空)함을 보는 자가 진리를 본다”고 말한다. 흩어진 지푸라기는 비로소 땅에 떨어져 새싹의 밑 거름이 될 수 있다. 유다의 포로 생활은 고통이지만, 동시에 이방 땅에서 참된 신앙을 재정립하는 계기가 된다. 절망 속에 내재된 희망의 씨앗이다.

4. 수치의 뿌리: “왜 이런 일이 내게 일어났는가?”
백성의 탄식—“어째서 이런 일이 나에게 일어났는가?”—은 자기 성찰 없는 피해의식이다.  『전도서』는 “우리가 행한 모든 것을 하나님께서 심판하시리라”(12:14)고 경고한다. 수 모는 외부에서 주어진 것이 아니라 내면의 부패가 표출된 결과다. 이슬람의 『하디스』  “악을 행한 자가 자신의 발로 지옥으로 걸어간다”고 비유한다.

이 물음은 오늘날에도 반복된다. 실패를 운명 탓으로 돌리는 이들, 타인의 책임으로 전가하는 이들—그러나 예레미야는 냉정하게 “네 죄악이 크기 때문”이라고 답한다. 불교에서  말하는 업(業)의 법칙처럼, 모든 결과에는 원인이 스며 있다. 수치감은 죄의 대가이자,  동시에 깨달음을 향한 첫 걸음이다.

5. 해산의 고통: 새로운 탄생을 위한 필연적 과정
“해산하는 여인처럼 진통을 겪지 않겠느냐?”는 예언은 고통의 필연성을 암시한다. 기독  『요한복음』은 “여인이 해산하면 슬픔이 기쁨으로 바뀐다”(16:21)고 말한다. 유다의 멸 절은 종말이 아니라 새로운 계약의 시작이다. 도교 『태평경』은 “혼돈이 극에 달해야   하늘이 열린다”고 설명한다.

이 진통은 개인적 차원에서도 적용된다. 자신의 어둠을 마주할 때 느끼는 정신적 고통은 영적 재탄생의 전주곡이다. 힌두교 『우파니샤드』는 “진리를 알면 모든 족쇄에서 벗어난다”(1.3.28)고 말하지만, 그 진실을 보기까지의 과정은 고통스럽다. 유다 백성의 포로 생활은 그들로 하여금 참된 하느님을 추구하게 만든다.

6. 바람과 지푸라기의 역설: 자유와 속박 사이
하나님의 심판—“사막 바람에 흩어버리리라”—은 파괴이자 해방이다. 지푸라기는 흩어짐으 로써 비로소 바람과 하나 된다. 『도덕경』은 “부드러움이 강함을 이긴다”(제78장)고 말 한다. 단단한 나무는 폭풍에 부러지지만, 풀잎은 휘어져 살아남는다. 유다의 흩어짐은 새로운 공동체의 탄생을 예비하는 유연함의 과정이다.

이는 개인의 삶에서도 마찬가지다. 고정관념에 매인 자는 바람에 흔들리는 대로 자신을  내맡길 용기가 없다. 반면 『금강경』의 “응무소주이생기심”(應無所住而生其心)은 집착  버릴 때 진정한 자유가 온다고 가르친다. 흩어짐의 공포를 받아들일 때, 비로소 새로운  정체성이 싹튼다.

마치며: 회복 불가능함 속의 가능성
예레미야 13장은 인간의 타락을 단죄하지만, 동시에 그 너머를 암시한다. 표범의 반점이 아름다움일 수 있듯, 에티오피아인의 피부색이 독특함일 수 있듯—죄악의 굴레조차 변혁  재료가 될 수 있다. 핵심은 자신의 본성을 직시하는 용기다. 불교의 연기(緣起) 사상처 , 모든 것은 조건에 따라 변한다. 흩어짐이 모임의 시작이고, 수치가 겸손의 뿌리라면, 예레미야의 엄한 경고는 끝이 아닌 새로운 시작에 대한 초대다.

인간은 표범의 반점을 지울 수 없지만, 그 반점을 자신의 표식으로 삼아 더 높은 길을   수 있다. 사막의 바람에 흩어진 지푸라기라도 어딘가에서 새 생명의 흙이 되리라는 믿음—그것이 예레미야가 전하는 가장 깊은 회복의 메시지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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