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말
“원한은 원한으로써는 끝나지 않는다. 원한 없는 것으로써만 끝난다.” 『법구경』 1장5구.
이 짧은 한 구절은 불교가 증오를 바라보는 총체적 시선을 담고 있다. 불교는 증오심 — 진(瞋) — 을 탐(貪)·치(癡)와 함께 *삼독(三毒)*이라 부르며, 만약 삼독이 마음을 장악하면 수행자는 물론 세간인(世間人)도 스스로를 파괴한다고 가르친다. 그렇다면 왜 우리는 증오를 단순히 “표현”하거나 “분출”하지 못하고 굳이 “숨겨야” 혹은 “잠재워야” 할까? 『대지도론』과 팔만대장경의 여러 경전은 이 물음에 대해 내적·사회적·궁극적 세 층위에서 답한다.
1. 증오의 첫 번째 독: 내면을 삼키는 불길
『대지도론』은 살생계(殺生戒)를 설하면서 “살생을 좋아하는 사람은 생명 있는 무리가 모두 보기를 싫어하거니와, 살생을 좋아하지 않으면 일체 중생이 모두 의지해 기대기를 좋아 한다.”라고 말한다. 여기서 살생을 부추기는 뿌리가 바로 ‘진’이다.
마음이 증오에 젖으면 첫째, 스스로 두려움을 만들어 낸다. 계를 지키는 사람은 “혼자서 다니더라도 두렵거나 어려운 일이 없다”고 하지만, 살기를 품은 이는 주변을 늘 경계해야 한다.
둘째, 죄업에 대한 후회가 뒤따른다. 『대지도론』은 “임종할 때에 마음이 안락하여 의심과 후회가 없다”는 경계를 지키는 이와 달리, 계를 어긴 이는 죽음이 다가올수록 번뇌가 증폭된다고 대비시킨다.
증오를 숨긴다는 말은 곧 내면에서 그것을 “참고 억누른다”는 뜻이 아니다. 불교의 관점에서 숨김은 ‘억압’이 아니라 ‘관찰과 멸(滅)’에 가깝다. 즉 ‘보지 못하도록 덮는다’가 아니라 ‘빛을 비추어 그 실체가 공(空)임을 알아차린다’이다.
2. 증오의 두 번째 독: 공동체를 무너뜨리는 칼날
살의를 품은 이는 동물조차 그 냄새를 알아채고 피한다고 했거니와, 인간 사회에서도 결과는 다르지 않다.
신뢰 붕괴: 『대지도론』은 거짓말 계(妄語戒)를 설명하며 “거짓말을 하는 사람은 먼저 자신을 속인 뒤에 남을 속이나니, … 하늘의 길과 열반의 문을 막아버린다”고 단언한다. 거짓말은 대부분 증오·탐욕을 숨기기 위한 수단으로 동원되며, 그 순간 자신과 타인의 관계망이 동시에 무너진다.
악지식(惡知識)의 위험: 제44권에서 용수는 “도둑은 단지 목숨을 해치고 재물을 빼앗을 뿐이지만, 악지식은 지혜와 명근(命根)을 해친다”고 경계한다. 증오로 가득한 이는 스스로 악지식이 되며, 타인의 선근(善根)까지 부러뜨린다.
그러므로 증오를 숨긴다는 것은 공동체를 지켜내려는 적극적 행위다. 마음속 불씨가 언어·행위로 터져 나오기 전에 성찰·관(觀)으로 돌려세우면 파괴적 연쇄 반응이 일어나지 않는다.
3. 증오를 숨기지 못할 때 나타나는 업보의 연기
삼독은 업의 씨앗이 되어 미래의 과보를 낳는다. 『대지도론』은 반복해서 “살생하는 사람은 금생과 내생에 갖가지 몸과 마음의 고통을 받”는다고 경고한다.
내재적 고통: 이미 현재 심장박동·호흡·수면 주기에 영향을 미치는 생리적 스트레스가 일어난다.
외재적 고통: 반복되는 대인 갈등, 폭력, 법적 처벌 등으로 현실적 손해가 돌아온다.
종국적 고통: 불교적 시간관에서 보면 증오에 기반한 악업은 새 몸을 받아 다시 고통을 경험할 가능성을 높인다.
따라서 증오를 ‘드러냄’은 현재·미래의 고통을 ‘약속’하는 일이며, ‘숨김’과 ‘소멸’은 고통의 연쇄를 끊는 첫 열쇠다.
4. 숨김에서 전환으로: 마음을 돌려세우는 네 단계
대승 경전들은 증오를 단순 억제하지 않고 전환하도록 지도한다. 실제 수행 단계는 다음과 같다.
관(觀): 내 마음에 일어난 화와 한(恨)을 있는 그대로 들여다본다.
혜(慧): “모든 법은 공하거늘” 증오 또한 영원불변의 실체가 아님을 통찰한다.
자(慈): 화의 대상에게 자기와 동일한 고통·공포가 있음을 상기한다.
행(行): 말·몸·뜻으로 자비를 실천한다. 이는 『대지도론』이 ‘진실한 말의 이익’을 설하며 “이것이 모든 출가한 사람들의 힘”이라 한 대목과 맞닿는다.
5. 현대적 삶과 ‘숨김’의 미학
현대 심리학에서도 ‘분노의 카타르시스’ 이론은 이미 효과가 미미하거나 역효과가 있다는 연구가 다수다. 그러나 불교적 ‘숨김’은 억압·도피가 아닌 지혜로운 보류다. 증오는 우리 안에 머무는 동안 관찰자의 빛 아래에서 본래의 허망성을 드러낸다.
6. 팔만대장경이 그려내는 증오 해탈의 지형도
팔만대장경은 한 마디로 “상대에게 가하는 상처는 곧 자신에게 돌아온다”는 연기(緣起)의 드넓은 지도다. 『유마경』은 “번뇌가 곧 보리”라 하여, 증오라는 번뇌가 지혜의 밑거름임을 밝힌다. 『화엄경』은 “일미진중함시방”이라는 거대 비전을 통해, 한 사람의 악의조차 무량한 세계에 파문을 일으킨다는 상호연관성을 드러낸다. 결국 증오를 숨기는 일은 개인의 도덕을 넘어, 법계(法界) 전체를 밝히는 일이다.
7. 결론: 숨김은 지혜의 첫 걸음
‘숨긴다’는 표현은 자칫 소극적으로 들린다. 그러나 불교적 맥락에서 숨김은 발화의 중지를 넘어 업의 고리를 절단하는 창조적 침묵이다.
내면적으로는 번뇌의 불씨를 관찰해 스스로 태워 없애는 *열반(涅槃)*의 예행연습이고,
사회적으로는 공동체를 상처에서 보호하는 *자비(慈悲)*의 방패이며,
궁극적으로는 삼세에 걸친 괴로움을 끊는 *지혜(般若)*의 출발점이다.
『대지도론』의 가르침대로 “진실한 말을 하는 사람은 그 마음이 단정하고 곧나니, 그 마음이 단정하고 곧다면 쉽게 괴로움을 면하게 된다”. 증오를 숨겨야 하는 까닭은 단호하다. 그것이 곧 나를 살리고, 남을 살리며, 삼라만상의 평화를 이루는 길이기 때문이다.
이 글은 오로지 불교 경전, 특히 『대지도론』과 팔만대장경 계열 경전에 근거하여 집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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